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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신화란

역사와 신화의 경계는?

OpenCV의 대가를 꿈꾸며. 2018. 4. 1. 15:24

그리스 신화는 영웅(인간)들의 이야기를 신들이 이름과 신들의 능력을 활용해 좀 더 멋진 이야기로 꾸미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즉 전혀 없던 이야기를 꾸며낸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실을 불멸하는 신의 이름과 신이 부여하는 정당성으로 포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어떤 부분이 실재 존재한 인간의 이야기이고, 어떤 부분이 가공된 부분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는 BC 13세기에 일어났던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가 5백년 후 장님이었던 호메로스가 서사시 형태로 남긴 것이 오늘에 전해지는 것이다. 어떤 사실이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고 구전 된다는 이야기는 말을 전하는 사람의 말재주, 상상력, 과장 등에 의해 내용이 조금씩 바뀔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BC 13 세기에 그리스 신들이 얼마나 체계화 되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하여간 그리스와 트로이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그리스와 트로이가 신흥 강대국으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쟁을 했는지, 먹고 사는 문제가 원인이었는지, 아마겟돈의 큰 야망이 원인이 되었는지, 트로이가 아마겟돈의 아버지를 죽여서 복수를 위한 것인지, 어느 것인지 모르지만 전쟁의 원인은 있었을 것이다. 야망과 욕망이 전쟁의 원인이었다는 것은 역사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알수 있다.


전쟁이 나고, 10년만에 전쟁이 끝났는지는 아니면 훨씬 빨리 끝났는지도 현재는 모르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손들에게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트로이 전쟁을 이야기 해 주었을 것이다. 당연히 초기에는 전달되는 내용이 비슷했을 것이다. 전쟁 이야기에는 신들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었고, 신들이 개입하면서 전쟁이 길어졌다는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그리스 신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모두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신들 때문에 일어났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변명이 되거나 거짓말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고, 100년이 지난 뒤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 진실을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다. 구전이라는 특성이 가미되어서 말재주 좋은 사람들이 다양한 양념과 조미료를 넣기 시작했을 것이다. 다시 100년이 흐르고, 또 다른 100년이 흘러 전쟁이 끝나고 500년이 흘렀다면 원본은 사라지고 전혀 다른 버젼의 소설이 되어 있게 되는 것이다. 전쟁의 원인이 앞서 이야기 한 인간의 욕망이 아니라 여신들의(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미인 선발 대회에서 누굴 미스진으로 뽑을 지를 결정하는 심판을 본 파리스라는 목동이 아프로디테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얻게 해 준다는 청탁을 받고, 아프로디테 손을 들어준 것이 전쟁의 원인이었다로 바뀐 것이다. 욕망과 야망에 의한 전쟁이 신들이 개입되면서 아름다움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으로 바뀐 것이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돈 좀 벌려고 전쟁을 했다라고 하는 것보다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해 전쟁을 했다라고 하는 것이 훨씬 멋지게 들리지 않겠는가?


인간은 전쟁의 추악한 모습에 소름이 돋고 치를 떤다. 이게 전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을 전해 듣는 제 3자의 입장에서는 호기심과 흥분이 솟구치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그 전쟁이 과거의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인간은 슬프고 괴로운 과거를 미화해서 기억하려는 본능이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들이 전쟁이후에도 꾿꾿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사에 나온 전쟁을 읽으면서 전쟁의 참혹상보다는 당시 전쟁의 영웅이 누구였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런 본능의 작용인지 모른다. 또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 보다 이야기가 가미되고, 교훈이 추가될 때 훨씬 오래 기억된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삼국지 이야기를 해보자. 삼국지는 중국에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을 나관중이 소설화한것이다.  삼국지의 역사적 사실을 한줄로 표현하면,  "한나라 말기 혼란을 틈타 위촉오라는 세 나라가 중국에 있었고, 위나라 사마중달의 아들 사마의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진나라가 되었다."가 된다. 이렇게 한 줄짜리 역사로만 존재했다면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했을 텐데, 작가의 상상력과 혼이 보태지자 동양의 고전이 되고, 삼국지를 읽지 않으면 문화인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역사를 배울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배우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다른 측면으로 호메로스가 장님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보이 것 때문에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 받는 경우가 많고, 보는 것에 의존하다 진정 보아야할 사실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문장이 진리가 아니라 우리를 눈 뜬 봉사로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달랐다. 비록 눈은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로 돌아가자. 트로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슐리만에 의해 증명이 되었고, 트로이 전쟁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배운 교훈을 후대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구전이라는 방법으로 영웅들이 이야기가 전달되었기 때문에 말재주가 좋은 스토리털레들은 조금씩 조금씩 양념을 넣었을 것이고, 영웅들의 활약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어 했을 것이고, 재미를 가미했을 것이다. 신들이 등장해서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고, 신들은 인간들을 훨씬 멋진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다. 즉 제우스와 포세이돈, 아테나, 헤라가 주인공이 아니라 아마겟돈, 헥토르, 아킬레우스, 오딧세이아가 주인공이고 신들은 이들 영웅들을 빛내 주긴 위한 주연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보태진 이야기가 5백년을 흘러 호메로스라는 거장을 만나 대 서사시로 거듭난 것이다. 역사와 신화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에게 더 많은 교훈을 남길 수 있고, 오래 기억될 수 있다면 신화면 어떻고, 사실이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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